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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족영화로 보는 계급문화

by surp0307 2025. 4. 10.

더 크라운

영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계급’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빈부 격차를 넘어서, 말투, 학교, 옷차림, 직업, 심지어 유머 감각까지 계급에 따라 분화되어 있는 나라. 그리고 그 계급적 긴장과 미묘한 차별은 영화에서도 자주 그려집니다.

특히 ‘가족’을 중심으로 한 영화에서는, 계급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기대와 갈등, 사회에서의 자기 위치 인식 등으로 드러나며 관객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국 가족영화를 통해 계급문화가 어떻게 표현되고 작동하는지를 대표작 세 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 탄광촌 소년의 꿈과 계급의 장벽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가족영화 중 계급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다룬 작품입니다. 배경은 1984년 대규모 탄광 파업이 벌어졌던 영국 북부 더럼 지역. 빌리는 권투 대신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고, 그 선택은 계급 문화가 강한 노동자 계층의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남자애가 무슨 발레냐”고 말하며 분노하고, 마을 사람들은 빌리를 ‘특이한 아이’로 바라봅니다. 여기서 발레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계급을 넘는 상징이 됩니다.

결국 빌리는 장학금을 받아 런던 로열 발레스쿨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는 곧 ‘계급 이동’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단지 성공의 의미가 아니라, 계급을 초월하는 데 필요한 노력, 고통, 용기를 말합니다.

✅ 계급문화 표현: 탄광 마을의 집단 의식, 남성성 중심의 가치관, 교육 기회의 제한 ✅ 가족 중심 갈등: 아버지와 형, 지역 사회와의 갈등, 자녀의 꿈에 대한 부모의 두려움

2. 더 크라운 (The Crown, 시리즈) – 왕실이라는 최상위 계급 속 가족의 균열

넷플릭스 시리즈지만 극영화에 준하는 완성도를 지닌 『더 크라운』은 영국 왕실이라는 최고 계급 안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내면을 통해 ‘계급’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족보다 국무를, 아내보다 여왕의 자리를 우선시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남편 필립 공과의 관계, 자녀들과의 거리감이 발생합니다.

이 작품은 왕실 내부의 사랑, 욕망, 외로움이 계급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억눌리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신분’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구조는 계급사회 영국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과 이혼 스토리는 계급적 요구와 개인적 감정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계급문화 표현: 왕실 의전, 대중과의 거리감, 역할 수행을 위한 감정 억제 ✅ 가족 중심 갈등: 자녀와 부모의 단절, 개인성과 공적 의무 사이의 분열

3. 이스트 이즈 이스트 (East is East, 1999) – 혼혈 가정 속 계급과 정체성

『이스트 이즈 이스트』는 1970년대 맨체스터를 배경으로 파키스탄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둔 가족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이민자 가족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계급, 문화, 인종이 얽힌 다층적 긴장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파키스탄 전통을 따르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영국의 대중문화, 언어,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을 ‘영국인’으로 느낍니다. 이러한 충돌은 계급적 긴장과 맞물리며 더욱 복잡해집니다.

아버지는 이민 1세대로서 사회적 상승을 위해 억누르며 살아왔지만, 아이들은 이미 다른 계층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죠. 이것은 단지 세대 차이가 아니라, ‘새로운 계급과 문화로의 이동’을 둘러싼 가족 내부의 분열입니다.

✅ 계급문화 표현: 인종 기반 편견, 이민자 계층의 경제적 위계, 동화와 저항 사이의 정체성 ✅ 가족 중심 갈등: 아버지와 자녀 간의 가치관 충돌, 전통과 개인 사이의 선택

결론: 가족은 계급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공간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발레리노가 되려는 아들의 도전, 『더 크라운』은 왕실이라는 최상위 계층에서 가족애조차 제한받는 구조, 『이스트 이즈 이스트』는 이민 가정 속 계급, 문화, 정체성의 갈등을 통해 계급이 가족을 어떻게 지배하고 흔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영국 가족영화는 단순한 감성의 이야기를 넘어 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랑, 교육,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담담하게, 때로는 아주 예리하게 그려냅니다.

계급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물의 사고방식, 삶의 방향, 감정의 표현 방식까지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간은 그 구조와 가장 치열하게 맞닿는 공간이기도 하죠.

영국 가족영화를 통해 계급을 들여다본다면, 그저 영화 한 편이 아닌, 사회학적 관찰을 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